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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늙어간다는 느낌. 에단 호크가 그렇다.
<죽은 시인들의 사회>가 그랬고, (10대)
<비포 선라이즈>가 그러했으며, (20대)
<비포 선셋>이 또한 그랬다. (30대)

그리고, 얼마 전, 보았던 <뉴욕, 아이러브유>에서 그는,
제시(<비포...>의 남자 주인공)가 40대가 되면 저러할 것 같다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제시를 기억하는 이라면,
<뉴욕, 아이러브유>를 보면 참 반가울 거다.


무엇보다, 오늘(10월22일)은,
한국에서 비포 선셋이 개봉한 지 5주년 되는 날.

사랑할 때, 당신과 꼭 함께 보고 싶은 이 영화(들).
함께 보실래요? ^.^*
그리하여, 난 제시, 당신은 셀린느.

아울러,로맨스.
이 말만 들어도 나처럼 가슴 설렐 당신에게 권하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원나잇 스탠드 그리고 하루(들)

2004년, 한 영화가 개봉했소. 그 영화의 개봉이 특별했던 건, 기다림 때문이었다오. 그것도 무려 9년이라는 시간. 한 사람을 1년도 기다릴 자신조차 없던 녀석이 9년이라니!

글쎄, 나도 웃긴다오. 고작 2시간도 되지 않을 시간인데, 그들의 특별한 하룻밤에 푹 빠져 9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렸으니. 모기가 피를 빨아먹기 위해 한 사람만을 기다린 것과 같이, 정말 이상한 노릇이 아닐 수 없소. 더구나 그 기다림은 예정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오. 후속편? 언감생심!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이었소. 혹시나 했던 것은 사실이라 해도 말이오. 그런데 나는 어떤 주술에 빠져 그저 막연하기 그지 없는 그 기다림을 하고 말았다오. 오호, 통재라. 어찌 하오리까.


“9번 트랙, 6개월 후 6시”

이 말만 없었어도 나는 그들을 궁금해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소. 미쳤지. 이 말이 뭐라고.-.-;; 그러고 보니 그들이 처음 만나 사랑을 나눴던 1995년, 나 역시 그들처럼 20대였소. 군대라는 철창에 갇혀 있던 그때. 휴가를 나와 우연히 그들의 이야길 접했고 그 대단하지도 않은 이야기에 어쩌다 마주친 ‘매혹’. 한마디로 당한거지. ‘원나잇 스탠드’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아~ 나도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 기차를 타야겠다. 한 커플이 싸우고 있는 기찻칸을 찾아 책을 읽다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누군가와, 같이 내려야겠구나!


그리곤 혼자 두둥~ 상상의 나래를 폈소. 휴지도 없이 화장실에 들어간 그들의 뒷일을 봐준 것이오. -.-;; 내 생애 가장 후일담이 궁금했던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그렇게 6개월 뒤를 기약했지만, 그 뒷일은 그 로맨스에 도취된 각자의 몫이었지요. 그러다 불쑥 9년이 지난 뒤 30대가 된 그들이 돌아오다니. 이번엔 <비포 선셋>! 해 뜰 때까지 체력을 자랑하며 빛나게 떠오르던 수다남녀는 이젠 해 질 때까지만 쌩쌩한, 지는 해가 된 거유?

그런데 나도 그들처럼 나이를 먹었더랬소. 나도 당신들처럼 30대라오. 하하하^^;; ‘6개월 후’란 약속은 증발하고 9년 만에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래 어떻소? 그런데 당신들 참 많이 늙었구료. 그동안 참 궁금했는데, 그리하여 후속편이 나온단 얘기를 듣자마자, 정식 개봉 전 선보인 그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보고 말았다오. 그렇게 해야 내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거든. 후후. 

재미있는 건 말이오. 당신들의 행적을 따라 내 마음이 그대로 움직였다는 거요. 나이를 먹고 세월을 머금었는데도 나는 당신들이 여전히 좋은가보우.

그들의 후일담, <비포 선셋>을 만나자, 나는,
비엔나가 아닌 파리를 가고 싶어졌고,
기차가 아닌 유람선을 타고 싶어졌고,
음악 청취실이 아닌 사랑하는 누군가의 집에 가기 위한 계단을 오르고 싶어졌고.
그리고 왈츠풍의 노래가 너무도 듣고 싶어졌다오.

다음엔 대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 거요? 그땐 아마 우리 모두 40대? 푸하하. 끔찍하오. 세월이. ^^;; 그런데 그것도 재미있구료. 해 뜨기 전과는 또 다르지만 부채살처럼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는 이야기의 단초를 제공한 채, 선셋의 풍경을 닫지 않았소. 다음에는 ‘애프터 선셋’? 혹은 ‘비포 문라이즈’? 대체 비포 비포만 읊어댄 당신들 다음엔 뭐 할거유? 애들은 재웠수? 이 담엔 (나도 40대가 될 땐) 40세 미만 관람불가로 어떻수, 콜?

수다남녀의 비엔나 여정에 빠진 이유

보고 또 보고 그들을 보는 재미란 쏠쏠하오. 특히나 가을이 짱이겠지만,  어느 계절이라도 상관은 없겠소. 가슴 저릿한 로맨스를 하거나 엿보는 것이 꼭 특정 계절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듯 말이오. 그들의 이야기는, 로맨스를 꿈꾸거나 로맨스를 하고 싶은 우리에게 정말 좋은 교재라오. 사랑에 목마르거나 통째로 사랑열매를 갈아 마시고픈 우리에겐, 그들은 하나의 축복이라오. 음하하. 

여기서, 그들이 처음 만난 얘기 잠깐.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채 하루도 되지 않는 시간. 그건 마법에 빠지는 순간이라오. 사랑했던, 아니 사랑에 풍덩 빠진 그때를 당신은 기억하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호감, 사랑이 전개되는 과정을. 단언하지만 그건 ‘마법’이라오. 각자 다른 세계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 마법은 ‘사랑’이란 형태로 변신하지. ‘우연’의 이름으로 기워진 ‘운명’과 ‘필연’의 사진첩 같은 거.


아 그런데,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표정이 보통이 아닌 거라. 일체의 영화적 장치나 우연의 남발 따위는 없소. 쫄깃쫄깃하게 밀착한 듯한 현실감. 더불어 여느 사랑이 그러하듯, 계획되지 않은 생의 어느 한 순간에 깜짝 다가온 사랑의 마법. 그들은 어느덧 마법이 아닌, 사랑의 포로가 돼 있더라오. 나는 그런 그들의 로맨스에 빠진 포로. ^.^

‘이 순간 (함께 내리자고) 말하지 않는다면 평생을 후회할지 몰라’라고 생각했을 제시(에단 호크)의 ‘타임머신론’이 비엔나에서의 동행을 촉발하고, ‘비엔나는 사랑을 싣고’ 익어간다오. 나는 이전엔 ‘하루’가 짧다고만 생각했지만, 아뿔싸 하루는 사실 충분한 시간이었소. 삶과 죽음, 인간, 남성과 여성, 가족, 미래, 사랑과 실연 등 그 수다는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더라오. 그것이 밍숭맹숭할 수도 있었던 수다남녀의 여정에 빠져든 이유요. 거기엔 또한 사랑이, 로맨스가 있었으니까. 사랑에 대한 방정식 풀이! 

서로를 알고 싶을 때 ‘진실게임’을 통해 솔직하게 자신의 첫 번째 성적 감정을 내뱉거나, ‘전화게임’으로 현재 자신의 심정을 전달하는 것도 괜찮다오. 무엇보다 ‘케이트 블룸’의 ‘Come here’를 들을 수 있는 음반가게 청취실의 풍경이 가장 짜릿하더이다. 몰래 상대를 훔쳐보다가 상대방 시선이 느껴지면 아닌 척 다른 곳을 쳐다보는. 서로에 대한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억지 애를 쓰는 표정과 분위기에, 내 가슴은 그저 콩닥콩닥. 무지무지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아웅~. 결국 셀린느는 나중에 “내가 다른 곳을 볼 때 날 몰래 훔쳐보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라며 고백까지 하구. (여기서 Tip. 몰래 훔쳐 볼 때는 상대방이 알게 하라! ^.^)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원나잇스탠드’

고백하자면, 뭐니뭐니해도 그들의 ‘원나잇 스탠드’가 가장 짜릿했소이다. 큭큭. 애당초 ‘내일’이 없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했던 그들은 그 ‘하룻밤’이 모든 것이었나보우. 근데 그 제약이 로맨스를 더욱 깊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소. 서로의 내면에 다가갈 시간이 없음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그들에게 미국과 프랑스라는 물리적 거리감까지. 에구구 사랑이 어쩌면 이렇게 멀고도 험하오. 하지만 그들은 지금-여기,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한다오. 역시, 그들은 사랑을 아는 사람들이오.

“내일이 지나고 나면 우린 아마 다시는 못 만나게 되겠지?”라고 묻는 셀린느의 질문부터, 그들은 ‘내일’을 생각하오. 흔들리면서도 그들은 말을 잇지. “오늘밤뿐이라고 해도 그리 나쁘진 않잖아?” “왜 사람들은 관계가 영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오늘밤뿐이라고 생각해. 망상도 추측도 없겠네” “그냥 오늘밤을 멋지게 만드는 거야”


서로 사랑에 빠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들은 서로의 처지를 아오. 그렇듯 사랑은,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사랑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은’ 시간을 함께 했는지가 더 중요한 것 아니겠소!

그래서 “키스 받고 싶어”라고 제시에게 속삭이던 셀린느의 표정! 나는 잊지 못하오. 그들이 그 순간 얼마나 서로를 원하고 사랑하는지, 그 감정이 찌리릿. 그리곤 깊은 밤을 함께 날았겠지? 직접 보여주진 않았지만, 그게 자연스럽잖소~

내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지만 <비포 선셋>은 아주 쉽게 그 날의 순간을 풀어놓더오. “그날 밤 함께 잔 기억이 없어. 난 콘돔 없이 안 하거든”이라며 딱 잡아떼던 셀린느는 제시의 추궁(?)에 “우리 그날 밤 두 번이나 했어”라고 그 날의 짜릿한 원나잇스탠드에 대해 발설하기도 한다오. 흐흐. ^______^

그들은 인간관계의 한계를 아는 것 같소. 대개의 사람들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영원히 이어가야 한다고 말하고 생각하지만, 어디 모든 경우가 그런가. 누군가를 만나고 연락처를 주고받지만 그 뒤 한두번 만나고 전화하다가 흐지부지되거나, 아예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잖오.

그렇다면 딱 그만큼의 관계이고 인연 또한 소중하지 않을까! 나는 제시와 셀린느를 보면서 깨달았고,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소. 어떤 관계든, 헤어진 연인이든, “인연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기. “딱 그만큼의 인연이고 관계”인 셈이라오. 그리하여, 그 순간에 충실하고 좀더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족해! 인연이 아니란 식으로 관계가 지속되지 못했음을 단정 짓는 건, 그저 자기 위안이 아닐까 하오. 그 인연을 맺었던 사람에겐 어쩌면, 예의가 아닌.   

단 하룻밤, ‘원나잇 스탠드’라고 규정짓더라도 그들은 그 시간, 자신들의 감정에 분명 충실했음이 분명하오. 누구에게나 휘발되고 말 ‘순간’이라도 추억과 낭만이 곁들여질 수 있겠지. 평생을 잊지 못하고 간직할 어느 감정을 품을 수도 있겠지. 그렇듯, 낭만에는 ‘순간성’이 존재하오. 낭만의 (끝나지 않은) 끝에 허무와 슬픔이 존재하더라도, 어쩌면 다시 만나 낭만을 다시 살릴지 모른다는 기대 혹은 희망이 있기에 사랑은 끝나지 않는 법. (어째, 그럴 듯한 궤변(!) 같소?ㅎ)

모든 것은 완벽하지 않은 법이오. “오늘밤뿐이라고 생각하자”던 그들이 다시 만날 약속을 힘겹게 하는 걸 보아하니. “내 맘과 다를까봐 두려웠어”라며 다시 만나잔 말을 쉽사리 꺼내지 못하던 그들은 결국 5년에서 1년, 그리고 6개월. 어젯밤부터, 즉 6월16일부터 6개월 후 저녁 6시, 12월에 다시 만나기로 한다오. 어땠소? 이게 또한 사람의 마음 아니겠소. 어젯밤과 또 다른 아침의 마음. 아침의 주림을 저녁의 다담상으로 잊는, 우리네 사람살이.


비엔나의 연인에서 파리의 연인으로

그들이 다시 만날까,하는 건 그저 관객의 마음에 맡긴 것으로 생각했다오. 그런데 감독(리처드 링클레이터)와 두 배우(에단 호크, 줄리 델피)도 궁금했나보우.

전화나 편지는 우울하다며 다른 어떤 안전장치도 하지 않은 그들은 9년 전 ‘later’이란 말로 서로를 보냈다고 하오. 사랑을 이어줄 수 있는 유일한 주문. 낭만의 끝에 약속을 담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끝이 아닌) 헤어짐. “너와 있어서 행복해. 넌 모를 거야. 왜 지금이 내 인생에서 그토록 중요한지. 멋진 아침이야. 이런 아침이 또 올까”라며 사랑에 달뜬 사람들의 후일담이 궁금하지 않으면 그게 제대로 된 인간이우. 커흑~ ‘최악의 이별은 추억할 만한 게 전혀 없다는 것’인데 그들에겐 추억이 너무너무 많지 않던가 말이오.

사실, 6개월의 약속은 어긋났다오. 낭만의 깨어짐이지. <비포 선셋>에선 그렇게 설명된다오. 9년 전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이리 기억했소. 기차역에서 헤어진 제시는 버스를 타고 피곤한 듯 머리를 뉘이고, 셀린느는 기차에서 창밖을 응시하며 미소를 짓다가 눈을 감는. 그들의 로맨스가 흩뿌려진 비엔나 곳곳의 풍경들이, 그들 없이 덩그러니 남은 풍경들이 하나둘 스쳐지나가면서 이야기는 접혔고.

근데 <비포 선셋>을 다시 만나니, “낭만은 죽지 않는다, 다만 부활할 뿐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이 났소. 다시 따따부따 수다를 풀기 시작하는 수다 로맨스의 재현이라. 근데 꽃미남에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지닌 한편으로 개구졌던 제시는 움푹 패인 얼굴에 주름이라는 훈장을 차고 훌쩍 커버린 남성의 향기를 품고 있었고, 아침햇살 같은 상큼한 매력의 셀린느도 역시나 같은 훈장에 농익을 대로 농익은 저녁노을 같은 여인이 돼 있었소. 그러나 그게 나쁜 건 아니었소. 나 역시 그들처럼 세월을 머금고 30대가 돼 있었거든. 좋잖아~ 제대로 나이를 머금는다는 것. 앞선 해와는 다른 나, 내가 겪은 세월의 흔적을 품을 수 있다는 것.

이 낭만은 항상 시간의 한계에 봉착하는 속성을 지니오. 전과 달리 해 지기 전까지의 시간. 다시 헤어짐을 전제로 옛 사랑을 확인하는 작업.

그들은 그날처럼 수다를 떨고 산책을 하더오. “나 좀 변했어?”라고 묻는 셀린느에게 제시는 “벗은 걸 봐야 알겠는데~”라고, 세월만큼 농 익은 그들의 수다를 풀어놓고. 물론 20대의 매혹적인 어록과는 다른 30대에 맞는 대화록을 재구성하오. 허투루 먹은 나이가 아닌, 현명하게 세월을 담금질한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그들의 수다에 매혹 당했다오. 같이 나이를 먹어서인지 그들의 수다가 귀에 쏙쏙 꽂히고 그 느낌과 감정을 알 것 같았소. 낯선 공간과 하룻밤이라는 제약이 준 강렬하고 절실한 감정과는 또 다른 공간과 시간에서의 흐름. 나는 무엇보다 해 뜨기 전에 나타나지 않은 그들의 힘겨움이 가슴에 박히더군.

지리멸렬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제시는 “누가 만지기만 해도 내 가슴은 무너져”라며 공허감을 토로하고 셀린느는 “그날 밤 내 모든 걸 쏟아 부어서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밤을 보냈는데, 다른 로맨스가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어?”라는 로맨스의 후유증을 내뱉지. 에휴~ 사랑아, 사랑아, 길을 묻고 싶다.


그러나! 30대라고 낭만이 없을쏘냐. 서글프고 지리멸렬한 삶에 끼어든 로맨스의 마술. 낭만은 그때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수다는 계속 돼야 하는 법이오. 우하하. 


따져보자면, 두 사람, 로맨스에 대한 생각이 서로 바뀌긴 했소. 사랑하는 사람이 머리를 어떻게 빗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말할 건지, 그렇게 서로를 아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던 셀린느는 사랑에 냉소적이고 시니컬한 현실적인 여인이 됐다오.

반면 같이 오래 산 부부들의 권태감을 얘기하던 20대의 제시는 그래도 사랑이 있어야 한다며 로맨스를 옹호하는 30대가 됐다오. 허허. 재미있더군. 그들은 한결같은 순수와 로맨스로 살아가는 20대가 더 이상 아닌 로맨스에 대한 환상과 허상의 교차로에서 자신들의 현실과 위치를 인식하고 있는. 세상을 근거 없는 낙관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택하는 냉소까지.

로맨스, 당신 생의 로맨스에 축복을..

중요한 건, 로맨스가 다시 부활한다는 것이었소. 해 뜨기 전의 그 잊지 못할 낭만은, 해 지기 전이라고 변하지 않았고 다른 모습과 형태의 낭만으로 나타나는 마술. 나는 그 수다를 다시 만나면서 행복했다오. 당신들도 알잖소. 9년 전 그들이 나누었던 그 하룻밤 로맨스가 얼마나 짜릿했는지. 사랑했던 기억은 세월이 흐르고, 주름이 자글자글 생기고, 옛 모습과 달라지더라도 잊혀 지지 않는 법인가보오. 그리고 다시 열린 결말을 던지는 그들의 잔인함(?).



로맨스. 이 말만 들어도 나처럼 가슴 설렐 당신에게 권하오. 내게 이 영화(들)은 사랑 혹은 로맨스, 관계와 인연, 감정의 교류, 사람살이를 알려준 영화였다오. 내 가슴에, 심장에 박힌 이야기이기도 하고. 당신도 이들을 만나보시오. 다시 이들을 만나도 좋고, 이들과 비슷한 세월을 머금지 않아도 좋소. 혹시나 제시와 셀린느를 보면서 유럽 배낭여행의 낭만을 꿈꾸었거나 하다못해 기차나 고속버스를 탈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기라도 했다면. 낯선 곳에서의 낯선 사람과 하룻밤을 보내면서 새로운 관계를 같은 비일상의 판타지도 빙고~


뭐 꼭 그런 게 아니라, 잊지 못할 옛사랑의 추억이 있어도 좋겠소. 당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누군가가 있소? 아님 지금과는 다른 삶을 생각해 본 적 없소? 과거의 어느 한 순간에 선택을 달리했다면 달라졌을 법한 잃어버린 기회. 물론 그런 가정은 무쓸모이지만, 현재 다시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로맨스를 나눴던 사랑을 우연히 만난다면, 추억과 그리움으로 쌓였던 그 날을 다시 복구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온다면,

당신은 어떡하겠소? (질문이 좀 가혹하더라도 용서하시오! ㅎㅎ) 


아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건네고,
다소 길었던 내 인생의 어떤 영화(들)에 대한 허접한 감상을 접겠소.

<비포 선라이즈>를 꼭 봐야할 열사람!! (오래 전, PC통신 천리안에 나온 글)  
1. 유럽여행의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고 싶은 사람.

2. 헌팅 또는 헌팅 당하려고 하는 족족 실패하는 사람.
3. 유럽여행 계획을 짜면서 비엔나의 갈만한 곳을 아직 정하지 못한 사람.
4.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과의 가슴 찡한 데이트코스 일정을 고민하는 사람.
5. 친구인지 애인인지 헷갈리는 상대방에게 유치하지 않게 속마음을 터놓고자 하는 사람.
6. 오래된 연인과의 지루한 만남에 지겨움을 느끼며 화이트의 ‘7년간의 사랑’에 오직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
7. 정확한 표준영어회화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8. 인터넷이나 영어 채팅방에 들어가서 감히 영어로 이성친구를 꼬시려고 하는 사람.
9. 이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경우를 당한 사람을 위해 미리 인터넷 사용법을 차분하고 친절하게 가르쳐 줄 사람.
10. 비포 선라이즈를 아직 보지 않은 모든 사람.


이건 내 마음대로 정한, <비포 선셋>을 꼬옥 봐야 할 열 사람! 

1. 사랑했던 사람과의 지키지 못한 약속이나 바람 맞은 기억을 지니고 있는 사람.
2. 파리의 골목골목과 구석을 돌아다니며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 픈 사람.
3. 유람선을 타고 지나간 사랑의 기억을 되새김질 하고픈 사람.
4. 잊지 못할 옛 사랑을 우연이라도 다시 만나고픈 사람.
5. '이젠 더 이상 내게 사랑을 없어'라며 사랑에 회의적인 사람.
6. 사랑에 거듭 실패하면서도 '그래도 사랑은 있어'라며 언젠가 다가올 새로운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
7. 하룻밤이라도 평생을 잊지 못할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
8. 언젠가 그 사랑을 책으로 엮어내고 싶은 사람.
9.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직접 노래를 부르고 싶은 사람.
10.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그 영화를 잊지 못하는 모든 사람.

posted by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