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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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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4. 14:08 문래동 아티스트


1. 점점 잠이 줄고 있다. 학교에 있을 때는 일곱 시간 넘게 자고 그랬는데 이곳에 와서는 하루 수면 시간이 겨우 세 네 시간인 것 같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피곤함을 많이 느끼지는 않는다. 나는 겨우 3일 만에 도시 사람이 된 것인가. 인간의 적응력이란. 가로등 빛이 끊이지 않는 도시의 소음이 잠으로부터 나를 인질로 붙잡다.

2. 모기에게 자선. 그러나 만족을 모르는 그들에게 탐욕에 상응하는 대가가 치러졌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되, 이곳의 방충망은 방충망이 아니다.

3. 3일 연속으로 꽃을 샀다. 꽃을 사면 기분이 좋다. 꽃 선물을 해도 기분이 좋다. 꽃 선물 을 받아도 기분이 좋다. 이래저래 기분이 좋다.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 지점토로 꽃을 만드는 걸 배웠다. 나는 어렸을 때 ‘엄마’, ‘아빠’ 다음으로 ‘꽃’을 말했다. 엄마의 품에 안겨 거리를 걷던 어린 나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거리의 나무, 자동차,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꽃’으로 만들어버렸다. 난 여전히 꽃을 좋아한다. 가끔씩 머리에 꽃을 꽂는다. 제비꽃을 가장 좋아했었다. 가장 아름다웠던 꽃의 기억은 작년 봄 학교 근처에 핀 목련 나무 세 그루. 그리고 당신은 히피들의 Flower Movement를 기억하나요? 나비도 꽃이었다. 꽃을 떠나기 전에는.

4. 나는 길치다. 진주의 지하상가나 홍대의 거리 같이 몇 번 돌아다닌 적이 있는 곳의 길도 잘 기억을 하지 못한다. 나에 대해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내가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고(물론 이전에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하나는 내가 걷는 것을 몹시 좋아한다는 거다. 나는 가끔씩 걷고 걷고 걷고 또 걷는다. 어제도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길을 못 찾아서 홍대의 밤길을 걷고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나쁘지 않아. 거리의 사람들이나 예쁜 카페들을 구경하며.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며. Don't run, just walk.

5. 예술 공단 내에서 내가 묵고 있는 숙소는 예술과 도시사회 연구소. 그러나 사실, 이곳은 후지다. 낙후된 철공소 상가 이층 건물에 차린 사무실이다. 그 사무실 한 켠에 외국에서 오는 예술가들이나 예술 공단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한 연대의 침대가 마련되어 있다.

문래역 7번 출구에서 나와서 문래 사거리까지 쭉 걸어와서 철공소들이 늘어서있는 좁은 거리를 따라 걸어오면 오래된 상가 건물이 있다. 그 건물의 더러운 계단을 올라와 이층 복도에 들어서면 사무실이 있다. 사무실 맞은편은 당구장이다. 화장실은 수세식인데 들어가면서 숨을 참게 되는 그런 곳이다. 어제는 변기에 똥이 묻어있었다. 내가 앉은 책상 밑에는 지네가 죽어있다. 나무로 만든 이층 침대는 잘 삐걱거리고 이불은 더럽다. 방충망은 찢어져서 발에는 모기가 문 자국이 수두룩하다. 샤워 실은 없어서 위 층에 사는 예술가의 집 샤워 실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곳도 수도에 연결한 호스에서 찬물만 조금씩 나온다. 찌그러진 맥주 캔을 비롯한 쓰레기와 잡동사니가 있다. 새벽까지도 철공소의 소음, 취객의 소리, 차 소리 등이 끊이질 않는다.

그와 동시에 이곳의 파랗게 칠해진 벽에는 프랑스의 스쾃에서 발행한 포스터, Free Tibet을 외치는 포스터, 문래 예술 공단에 관한 신문 기사들, 전시회 정보와 사진 등이 붙어있고, 책꽂이에는 예술 관련 서적들과 논문 자료, 보고서 등이 꽂혀있다. 창문에는 빨간색 모직 커튼이 달려 있어서 빛이 들어오면 운치 있고 파랑, 노랑, 빨강으로 칠해진 벽 때문에 공간에서 생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는 자본에 반대하고 몸의 편안함보다는 자신들의 신념과 가치를 추구하는 실천적인 삶을 사는 예술가들의 흔적이 배어있다. 그래서 나는 후진 이곳이 좋다.

6.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겉으로 봤을 때 비슷한 삶을 살아갈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도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삶의 경험이라든지 생각하는 방식이라든지 하다못해 입맛이나 옷에 대한 취향까지 서로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답은 없지만 ‘다양성’이 답이지 않을까. 과일이 수박뿐이라면, 라면이 신라면 뿐이라면, 옷이 모두 검정색이라면, 모든 남자가 대머리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다면 얼마나 재미없을 지 생각해보라. ‘다양성’은 유쾌하고 감사한 가치임이 분명하다. 세상 곳곳에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존재함으로써 나의 삶 역시 존재한다. 세상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거대하고 정교한 퍼즐 조각임이 틀림없다. Every one piece makes the whole thing.

7. 만난 사람1. 정가악회 천재영 씨

전 날 서대문역 문화 일보 홀에서 젊은 국악 연대 '모여 놀기 프로젝트 2'의 인디국악축제 첫 번째 팀 국악그룹 '정가악회'의 공연을 관람했다. 정가악회는 2000년에 창단되어 가곡과 줄풍류 등 전통음악과 새로운 창작음악을 바탕으로 국내를 비롯한 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단체이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정가악회, 중남미 문학과 만나다'로 문학과 음악이 결합된 낭독음악극을 선보였다. 오늘은 정가악회의 천재영 씨를 만나서 공연을 본 소감을 이야기하고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다. 공연 뿐 만 아니라 국악, 최근의 문화 정책 등을 비롯해서 폭넓은 대화를 나누었다. 천재영 씨의 목소리는 그가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만큼이나 좋았다.

8. 만난 사람2. 바리스타 김이준수 씨

문래 예술 공단 내에 있는 연구소인 LAB 39에서 프로젝트 공정 무역 카페를 운영한다. 그곳의 일을 돕는 것이 내가 이곳에서 해야 할 일들 중 하나. 어제 오후와 오늘 오전을 밖에서 보냈기 때문에 오늘 오후에서야 카페에 찾아갔다. 첫 날 무거운 짐을 들고 땀을 삐질 흘리며 공단에 도착했을 때 얼음을 띄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선사하셨던 분. 김이준수 씨를 만났다. 손님들이 없는 틈을 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이준수 씨는 10년간의 기자 생활을 접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지금은 멋진 바리스타가 되었다. 커피가 맛있다. 나는 많이 컸다. 이제 원두커피도 마신다. 게다가 시럽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많이 컸다. 새로운 사람과 만나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너무나도 즐겁다.

9. Luminous night
   결론 : 나는 3일 째 이곳에서 생활하며 몹시 즐거워하고 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