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문래동 이야기.
낭만_커피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total
  • today
  • yesterday
2009. 7. 4. 14:03 문래동 아티스트


어젯밤 11:30 p.m. 저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씻고 정리를 하고 글을 쓰다.

오늘 새벽 01:30 a.m. 글 쓰는 것을 마치고 이층 침대 위에 힘겹게 기어 올라가다.

AND 모기장에 얼굴만 넣고 다리는 이불 속에 넣고 잠을 청하려 했지만
SHIT 평소에는 잘만 자던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FURTHER 난데없이 비가 내리고 천둥 번개가 쳤다. 악천후의 사운드가 날 압도했다.
SO 의식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모기, 더위, 악천후 사운드, 상념으로 인해 고통 받다.
SUDDENLY 불이 켜지고 2차를 갔던 언니 오빠 아저씨가 들이닥치다.

아무튼 그 와중에 틈틈이 잠을 잤고 결국엔 아침이 밝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내게 남은 건 발목에 물린 모기 자국과 어깨 결림과 어젯밤 자다가 깨서 핸드폰으로 확인한 뚜렷하게 기억나는 시간들. 02:36 04:48 06:06 아무튼 난 예술과 도시사회 연구소의 첫날밤을 그렇게 보냈다. 어떻게 생각하면 고통스러울 법한 밤이었음에도 난 자다가도 가끔씩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과 ‘나만큼 스펙터클하게 인턴십의 첫날밤을 보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히죽거렸다. 정말이다. 아무튼 다사다난했던 지난밤을 보낸 뒤 감사한 아침을 맞고 커피를 내려 마시려고 필터 지를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안 먹느니 못한 믹스 커피를 탔다. 범 씨가 일어났다. 그리고 박찬국 아저씨도 일어났다. 김강 언니도 일어났다. 다 일어났다. 난 정말로 만나게 된 예술가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파란 벽에 붙어있는 시계 바늘이 열한 시를 넘겼다. 난 일어나서 짐을 챙겨 LAB 39로 갔다. 공정무역 카페의 바리스타 님을 만나러. 하지만 문이 닫혀있기에 단념. 계단을 내려와서 건물 밖을 나서려는데 비가 오네. 기다렸다. 잠잠해질 때까지. 그런데 어제 식당의 이모가 지나가시다 날 발견. 일 도와준다며. 지금 갈게요. 그러고 따라갔다. 그렇게 해서 이모들의 사진이 예쁘게 벽화로 그려진 그곳 식당에서 난 이모들의 딸로 둔갑. 한 시간 동안 설거지를 했다. 겨우 한 시간이지만 설거지할 거리가 끊임없어서 중간에는 ‘앗 내가 이곳에 식당 알바 뛰러 왔는가.’하는 자괴감이 잠깐 스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모들은 친절했고 난 맛있는 점심밥을 얻어먹었다. 그리고 두 시에 있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위해서 지하철역으로 출발.

갤러리 인터 알리아를 방문해서 선생님의 올케인 아트 컨설턴트 언니에게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감성론이라는 주제의 전시를 관람했다. 권오상, 정연두, 홍경택 씨를 비롯한 잘 나가는 일곱 명의 작가들의 작품들이 떼로 있었다. 미술 잡지를 통해서 이미 사진으로 봤던 회화나 조각들도 많았다. 관람 후에는 라운지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자본과 예술의 상관관계에 대한 막연한 질문을 던졌다. 이 시대에 예술이 상업과 결탁하는 것을 무조건 비난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예술 작품이 주식과 같은 투자 가치로 전락해 버리는 것은 석연치 않다. 어쨌거나 상업 갤러리라는 점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전시는 흥미로웠다. 저녁을 먹고 난 뒤에는 서대문에 정악을 연주하는 정과악회의 공연을 보러갔다. 우리의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정악이라는 장르는 많이 생소했다. 서창극 역시 멜로디와 가사가 같이 가는 일반적인 노래와는 너무도 달라서 처음에는 약간 지루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수준 높은 공연이었고 창의적이었다. 연주와 함께 공연된 문둥이 춤이 특히 좋았다. 그리고 공연을 직접 보면 좋은 점이 거문고, 대금, 피리, 가야금, 해금, 장구를 연주하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지켜보면서 그 하나하나의 소리도 주의 깊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우리의 음악은 아름다웠다. ‘나도 세계 여행에 발을 내딛기 전에 단소라든지 피리라든지 우리나라 악기 하나 정도는 익혀둬야지.’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는 지하철을 혼자 타고 갔다. 그리고 역을 거치며 수없이 타고 내리는 많은 사람들, 그 모르는 사람들을 보며 ‘도시에서의 익명성’을 절감했다. 그 남자는 누군가의 남자친구이자 누군가의 아들이자 누군가의 친구일 텐데 그 지하철 공간 안에서 는 단지, 나와 전혀 상관없는 타인으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있어 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쩌면 도시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옆 자리에 아기를 안은 아주머니가 탔는데 오직 어린 아이라는 존재만이 그러한 벽을 허무는 여지를 주나 보다. 나는 ‘타인인’ 그 어린 아이에게 도리질을 하고 눈을 마주치고 까꿍을 해댔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서 있는 아주머니도 아기를 보며 웃고 있고 맞은편에 앉은 여자도 아기에게 소통을 시도 하고 있다. 바로 앞에 서 있는 여자는 아기의 어머니에게 질문까지 한다. 아기는 위대하다. 모든 것을 허물어 버린다. 그렇다면 지하철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아기가 된다면 좋을 텐데. 어쨌거나 지하철 안에서 친구들과 함께 떠들고 웃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충정로역에서 장미를 싸게 팔았다. 흰 장미 한 다발을 샀다. 아침에 위층에 사는 카트린의 집에 샤워 하러 갔을 때 꽃병에 꽂혀있던 시든 꽃들을 보았거든. 그렇게 장미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짐을 풀고. 잠시 위층에 올라가서 카트린의 문을 두드리고 장미를 주었다. 고맙다며 웃는다. 나도 웃는다. 좋구나. 내려온다.

그리고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생각을 해보니 여기에 온지 이틀째 인데 발을 들인 곳이 랩39와 여기 숙소가 전부다. 문래 예술 공단 지도를 떼어낸다. 그리고 결심한다. 내일부터는 구석구석 들여다보아야겠군. 그리고 지도를 보다보니 아까 카트린의 옆집에서 문을 열고 얼굴을 빼꼼 내밀었던 남자의 이름도 알게 되었다.

02:36 a.m. 또 다시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되어버리다. 오늘도 재밌기를.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