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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5. 10:51 문래동 아티스트


1. 기쁨을 소리로 표현하는 것은 쉬운데 텍스트로 표현해내는 건 어려운 것 같다. 기쁘다. 기쁘다. 기쁘다. 기쁜 것도 정도가 있는데 텍스트에서는 억양이라든지 소리를 통한 강조라든지 하는 ‘말’이 가진 기능을 담아내지 못하니까. 음 느낌표를 덧붙이면? 기쁘다! 기쁘다! 기쁘다! 아무래도 기쁘다. 보다는 기쁘다! 가 분명히 더 기뻐 보이기는 한데 뭔가 부족해. 그렇다면 부사를 덧붙여서 의미를 좀 더 강조해보자. 몹시 기쁘다. 무척 기쁘다. 매우 기쁘다. 그렇지만 그것도 성에 차지 않는다. 뭐랄까. 너무 문학적인 표현이야. 낄낄. 그렇다면 졸라 기쁘다. 는 어때? 음 물론 매우 몹시 무척보다는 ‘졸라’가 훨씬 더 파고드는 표현이긴 한데 바람직한 언어는 아니니까. 아니면 이런 건?

그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 개골은 끼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이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과장된 표현과 기교가 섞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앞의 예들보다는 훨씬 더 기뻐 보인다. 역시 글은 힘들어.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두개골을 박살내고 가죽까지 벗겨야하다니. 행복감에 젖은 표정으로 세 음절만 내뱉으면 ‘기쁘다’는 것을 힘들이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데.

2. 어쨌거나 나는 기쁘다. 이곳에 너무 잘 온 것 같아. 하루하루가 너무 재밌어서 죽을 것 같다. 오늘의 일정은 여섯시부터 시작되었다. 전 날 친구를 만나서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용 반작용으로 오늘은 퍼졌다. 썼던 글들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리고 음악을 듣고 낮잠을 조금 자고 하면서 나의 아지트를 지켰다. 여섯시가 되어서 LAB 39 카페를 찾았다.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며칠 동안 카페 일은 하나도 돕지 않고 커피만 얻어 마시고 있다. 좋다. 좋다. 좋다.

3. 카트린의 집들이 전시. 스크린엔 미셸 공드리의 영상 제작 과정이 담긴 영상이, 테이블 위에는 파스타 샐러드와 같은 먹을거리, 아이스박스엔 맥주가, 벽에는 카트린이 그린 일러스트와 직접 만든 인형들이. 완벽하잖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들을 즐기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마임가, 사진작가, 디자이너, 미디어 아티스트, 바리스타, 바리스타의 선배인 공무원, 카트린의 어학당 친구들. 내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소파에 앉아서 방석 위에 앉아서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도 자연스럽게 끼어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다. 내가 맡은 것은 간디학교에서 온 전혀 스무 살 같아 보이지 않는 스무 살 학생의 역할.

4.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서 담그고 있기도 하고 폼 클렌징으로 정성스럽게 닦아주었으나 내 발바닥은 여전히 새까맣다. 어제 맨발로 춤을 췄거든. 그런데 이사도라 던컨 같은 우아한 춤을 춘 게 아니라 칵테일 엎어진 것과 타다 만 담배꽁초가 버려진 창고 바닥에서 춤을 췄더니 발이 그렇게 됐다. 어제는 새벽까지 문래 예술 공단 내에 비트가 강렬한 음악이 들리고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 민원 받은 경찰이 제재를 가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전시회인 줄 알고 갔다가 얼떨결에 그 파티에 동참해버렸다. 빈 창고에 문래 작가들의 일러스트 작품, 조각 작품 등을 설치하고 디제이들이 믹싱을 하는 파티. 오예. 그런데 앰프에서는 클럽 음악이 미친 듯이 흘러나오는데 사람들이 춤은 안 추고 바깥에서 얼쩡대기만 해서 회화를 하시는 문래 작가 분과 함께 플로어에 들어가서 춤을 췄다. 예술가들과 파티 고어들이 모인 것 같은데 또 그렇게 망석을 깔아주는데 사람들이 고상을 떠는지 춤을 안 춘다. 뭐 상관없다. 나는 신발을 벗고 춤을 췄다. 기쁨에 겨워서.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7. 4. 14:08 문래동 아티스트


1. 점점 잠이 줄고 있다. 학교에 있을 때는 일곱 시간 넘게 자고 그랬는데 이곳에 와서는 하루 수면 시간이 겨우 세 네 시간인 것 같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피곤함을 많이 느끼지는 않는다. 나는 겨우 3일 만에 도시 사람이 된 것인가. 인간의 적응력이란. 가로등 빛이 끊이지 않는 도시의 소음이 잠으로부터 나를 인질로 붙잡다.

2. 모기에게 자선. 그러나 만족을 모르는 그들에게 탐욕에 상응하는 대가가 치러졌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되, 이곳의 방충망은 방충망이 아니다.

3. 3일 연속으로 꽃을 샀다. 꽃을 사면 기분이 좋다. 꽃 선물을 해도 기분이 좋다. 꽃 선물 을 받아도 기분이 좋다. 이래저래 기분이 좋다.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 지점토로 꽃을 만드는 걸 배웠다. 나는 어렸을 때 ‘엄마’, ‘아빠’ 다음으로 ‘꽃’을 말했다. 엄마의 품에 안겨 거리를 걷던 어린 나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거리의 나무, 자동차,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꽃’으로 만들어버렸다. 난 여전히 꽃을 좋아한다. 가끔씩 머리에 꽃을 꽂는다. 제비꽃을 가장 좋아했었다. 가장 아름다웠던 꽃의 기억은 작년 봄 학교 근처에 핀 목련 나무 세 그루. 그리고 당신은 히피들의 Flower Movement를 기억하나요? 나비도 꽃이었다. 꽃을 떠나기 전에는.

4. 나는 길치다. 진주의 지하상가나 홍대의 거리 같이 몇 번 돌아다닌 적이 있는 곳의 길도 잘 기억을 하지 못한다. 나에 대해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내가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고(물론 이전에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하나는 내가 걷는 것을 몹시 좋아한다는 거다. 나는 가끔씩 걷고 걷고 걷고 또 걷는다. 어제도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길을 못 찾아서 홍대의 밤길을 걷고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나쁘지 않아. 거리의 사람들이나 예쁜 카페들을 구경하며.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며. Don't run, just walk.

5. 예술 공단 내에서 내가 묵고 있는 숙소는 예술과 도시사회 연구소. 그러나 사실, 이곳은 후지다. 낙후된 철공소 상가 이층 건물에 차린 사무실이다. 그 사무실 한 켠에 외국에서 오는 예술가들이나 예술 공단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한 연대의 침대가 마련되어 있다.

문래역 7번 출구에서 나와서 문래 사거리까지 쭉 걸어와서 철공소들이 늘어서있는 좁은 거리를 따라 걸어오면 오래된 상가 건물이 있다. 그 건물의 더러운 계단을 올라와 이층 복도에 들어서면 사무실이 있다. 사무실 맞은편은 당구장이다. 화장실은 수세식인데 들어가면서 숨을 참게 되는 그런 곳이다. 어제는 변기에 똥이 묻어있었다. 내가 앉은 책상 밑에는 지네가 죽어있다. 나무로 만든 이층 침대는 잘 삐걱거리고 이불은 더럽다. 방충망은 찢어져서 발에는 모기가 문 자국이 수두룩하다. 샤워 실은 없어서 위 층에 사는 예술가의 집 샤워 실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곳도 수도에 연결한 호스에서 찬물만 조금씩 나온다. 찌그러진 맥주 캔을 비롯한 쓰레기와 잡동사니가 있다. 새벽까지도 철공소의 소음, 취객의 소리, 차 소리 등이 끊이질 않는다.

그와 동시에 이곳의 파랗게 칠해진 벽에는 프랑스의 스쾃에서 발행한 포스터, Free Tibet을 외치는 포스터, 문래 예술 공단에 관한 신문 기사들, 전시회 정보와 사진 등이 붙어있고, 책꽂이에는 예술 관련 서적들과 논문 자료, 보고서 등이 꽂혀있다. 창문에는 빨간색 모직 커튼이 달려 있어서 빛이 들어오면 운치 있고 파랑, 노랑, 빨강으로 칠해진 벽 때문에 공간에서 생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는 자본에 반대하고 몸의 편안함보다는 자신들의 신념과 가치를 추구하는 실천적인 삶을 사는 예술가들의 흔적이 배어있다. 그래서 나는 후진 이곳이 좋다.

6.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겉으로 봤을 때 비슷한 삶을 살아갈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도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삶의 경험이라든지 생각하는 방식이라든지 하다못해 입맛이나 옷에 대한 취향까지 서로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답은 없지만 ‘다양성’이 답이지 않을까. 과일이 수박뿐이라면, 라면이 신라면 뿐이라면, 옷이 모두 검정색이라면, 모든 남자가 대머리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다면 얼마나 재미없을 지 생각해보라. ‘다양성’은 유쾌하고 감사한 가치임이 분명하다. 세상 곳곳에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존재함으로써 나의 삶 역시 존재한다. 세상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거대하고 정교한 퍼즐 조각임이 틀림없다. Every one piece makes the whole thing.

7. 만난 사람1. 정가악회 천재영 씨

전 날 서대문역 문화 일보 홀에서 젊은 국악 연대 '모여 놀기 프로젝트 2'의 인디국악축제 첫 번째 팀 국악그룹 '정가악회'의 공연을 관람했다. 정가악회는 2000년에 창단되어 가곡과 줄풍류 등 전통음악과 새로운 창작음악을 바탕으로 국내를 비롯한 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단체이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정가악회, 중남미 문학과 만나다'로 문학과 음악이 결합된 낭독음악극을 선보였다. 오늘은 정가악회의 천재영 씨를 만나서 공연을 본 소감을 이야기하고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다. 공연 뿐 만 아니라 국악, 최근의 문화 정책 등을 비롯해서 폭넓은 대화를 나누었다. 천재영 씨의 목소리는 그가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만큼이나 좋았다.

8. 만난 사람2. 바리스타 김이준수 씨

문래 예술 공단 내에 있는 연구소인 LAB 39에서 프로젝트 공정 무역 카페를 운영한다. 그곳의 일을 돕는 것이 내가 이곳에서 해야 할 일들 중 하나. 어제 오후와 오늘 오전을 밖에서 보냈기 때문에 오늘 오후에서야 카페에 찾아갔다. 첫 날 무거운 짐을 들고 땀을 삐질 흘리며 공단에 도착했을 때 얼음을 띄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선사하셨던 분. 김이준수 씨를 만났다. 손님들이 없는 틈을 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이준수 씨는 10년간의 기자 생활을 접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지금은 멋진 바리스타가 되었다. 커피가 맛있다. 나는 많이 컸다. 이제 원두커피도 마신다. 게다가 시럽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많이 컸다. 새로운 사람과 만나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너무나도 즐겁다.

9. Luminous night
   결론 : 나는 3일 째 이곳에서 생활하며 몹시 즐거워하고 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7. 4. 14:03 문래동 아티스트


어젯밤 11:30 p.m. 저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씻고 정리를 하고 글을 쓰다.

오늘 새벽 01:30 a.m. 글 쓰는 것을 마치고 이층 침대 위에 힘겹게 기어 올라가다.

AND 모기장에 얼굴만 넣고 다리는 이불 속에 넣고 잠을 청하려 했지만
SHIT 평소에는 잘만 자던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FURTHER 난데없이 비가 내리고 천둥 번개가 쳤다. 악천후의 사운드가 날 압도했다.
SO 의식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모기, 더위, 악천후 사운드, 상념으로 인해 고통 받다.
SUDDENLY 불이 켜지고 2차를 갔던 언니 오빠 아저씨가 들이닥치다.

아무튼 그 와중에 틈틈이 잠을 잤고 결국엔 아침이 밝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내게 남은 건 발목에 물린 모기 자국과 어깨 결림과 어젯밤 자다가 깨서 핸드폰으로 확인한 뚜렷하게 기억나는 시간들. 02:36 04:48 06:06 아무튼 난 예술과 도시사회 연구소의 첫날밤을 그렇게 보냈다. 어떻게 생각하면 고통스러울 법한 밤이었음에도 난 자다가도 가끔씩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과 ‘나만큼 스펙터클하게 인턴십의 첫날밤을 보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히죽거렸다. 정말이다. 아무튼 다사다난했던 지난밤을 보낸 뒤 감사한 아침을 맞고 커피를 내려 마시려고 필터 지를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안 먹느니 못한 믹스 커피를 탔다. 범 씨가 일어났다. 그리고 박찬국 아저씨도 일어났다. 김강 언니도 일어났다. 다 일어났다. 난 정말로 만나게 된 예술가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파란 벽에 붙어있는 시계 바늘이 열한 시를 넘겼다. 난 일어나서 짐을 챙겨 LAB 39로 갔다. 공정무역 카페의 바리스타 님을 만나러. 하지만 문이 닫혀있기에 단념. 계단을 내려와서 건물 밖을 나서려는데 비가 오네. 기다렸다. 잠잠해질 때까지. 그런데 어제 식당의 이모가 지나가시다 날 발견. 일 도와준다며. 지금 갈게요. 그러고 따라갔다. 그렇게 해서 이모들의 사진이 예쁘게 벽화로 그려진 그곳 식당에서 난 이모들의 딸로 둔갑. 한 시간 동안 설거지를 했다. 겨우 한 시간이지만 설거지할 거리가 끊임없어서 중간에는 ‘앗 내가 이곳에 식당 알바 뛰러 왔는가.’하는 자괴감이 잠깐 스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모들은 친절했고 난 맛있는 점심밥을 얻어먹었다. 그리고 두 시에 있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위해서 지하철역으로 출발.

갤러리 인터 알리아를 방문해서 선생님의 올케인 아트 컨설턴트 언니에게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감성론이라는 주제의 전시를 관람했다. 권오상, 정연두, 홍경택 씨를 비롯한 잘 나가는 일곱 명의 작가들의 작품들이 떼로 있었다. 미술 잡지를 통해서 이미 사진으로 봤던 회화나 조각들도 많았다. 관람 후에는 라운지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자본과 예술의 상관관계에 대한 막연한 질문을 던졌다. 이 시대에 예술이 상업과 결탁하는 것을 무조건 비난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예술 작품이 주식과 같은 투자 가치로 전락해 버리는 것은 석연치 않다. 어쨌거나 상업 갤러리라는 점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전시는 흥미로웠다. 저녁을 먹고 난 뒤에는 서대문에 정악을 연주하는 정과악회의 공연을 보러갔다. 우리의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정악이라는 장르는 많이 생소했다. 서창극 역시 멜로디와 가사가 같이 가는 일반적인 노래와는 너무도 달라서 처음에는 약간 지루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수준 높은 공연이었고 창의적이었다. 연주와 함께 공연된 문둥이 춤이 특히 좋았다. 그리고 공연을 직접 보면 좋은 점이 거문고, 대금, 피리, 가야금, 해금, 장구를 연주하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지켜보면서 그 하나하나의 소리도 주의 깊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우리의 음악은 아름다웠다. ‘나도 세계 여행에 발을 내딛기 전에 단소라든지 피리라든지 우리나라 악기 하나 정도는 익혀둬야지.’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는 지하철을 혼자 타고 갔다. 그리고 역을 거치며 수없이 타고 내리는 많은 사람들, 그 모르는 사람들을 보며 ‘도시에서의 익명성’을 절감했다. 그 남자는 누군가의 남자친구이자 누군가의 아들이자 누군가의 친구일 텐데 그 지하철 공간 안에서 는 단지, 나와 전혀 상관없는 타인으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있어 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쩌면 도시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옆 자리에 아기를 안은 아주머니가 탔는데 오직 어린 아이라는 존재만이 그러한 벽을 허무는 여지를 주나 보다. 나는 ‘타인인’ 그 어린 아이에게 도리질을 하고 눈을 마주치고 까꿍을 해댔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서 있는 아주머니도 아기를 보며 웃고 있고 맞은편에 앉은 여자도 아기에게 소통을 시도 하고 있다. 바로 앞에 서 있는 여자는 아기의 어머니에게 질문까지 한다. 아기는 위대하다. 모든 것을 허물어 버린다. 그렇다면 지하철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아기가 된다면 좋을 텐데. 어쨌거나 지하철 안에서 친구들과 함께 떠들고 웃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충정로역에서 장미를 싸게 팔았다. 흰 장미 한 다발을 샀다. 아침에 위층에 사는 카트린의 집에 샤워 하러 갔을 때 꽃병에 꽂혀있던 시든 꽃들을 보았거든. 그렇게 장미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짐을 풀고. 잠시 위층에 올라가서 카트린의 문을 두드리고 장미를 주었다. 고맙다며 웃는다. 나도 웃는다. 좋구나. 내려온다.

그리고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생각을 해보니 여기에 온지 이틀째 인데 발을 들인 곳이 랩39와 여기 숙소가 전부다. 문래 예술 공단 지도를 떼어낸다. 그리고 결심한다. 내일부터는 구석구석 들여다보아야겠군. 그리고 지도를 보다보니 아까 카트린의 옆집에서 문을 열고 얼굴을 빼꼼 내밀었던 남자의 이름도 알게 되었다.

02:36 a.m. 또 다시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되어버리다. 오늘도 재밌기를.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