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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1. 12. 18:50 문래 인디커피하우스
우석훈 박사의 표현에 따르자면, 나는, "인생 더러운 놈"이다. ^.~
'혁명'이라는 말에, 가슴이 훅 뜨거워지고, 심박이 불끈불끈 빨라지며,
피는 좌심실을 지나 대동맥으로 빨간불을 켜면서 흘러간다.

그러니까,
지난 11월7일이 그랬다.
역사를 들춰보자면, 볼셰비키 혁명(10월 혁명)의 92주년.
더불어, 뜨거웠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탄신일. 탄생 130년.

그 혁명질을 떠올리며,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에쓰쁘레쏘 룽고를 따랐다.
공식적으로 돈을 받고 처음으로 행하는 커피 수업이 있던 날.
골다방으로 찾아온 8명의 커피스트들을 위해 나는,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과 커피를 통해 바라보는 세계를 이야기했다.

그렇게 모인 8명을 위해 가진 나의 첫 커피수업.
내가 이날 에쏘 룽고를 마시는 이유를 말했지만, 그들은 쉬이 알아차리진 못했을 터.

어쨌거나 그것이 나의 역사에선 하나의 선을 긋는 일이 아닐쏘냐.
내가 첫 수업을 한 날이 10월 혁명이 있었고 트로츠키가 태어난 날이라는,
괜히 혼자 의미를 부여하면서 잔재미를 느끼기도 했지만,   

사람의 많고 적음은 아무 것도 아니다.
역사적인 순간은 늘 그렇게 소수에서 시작한다지 않나.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최후의 만찬에 모인 사람은 13명이었고,

1976년 6월4일 영국 맨체스터, 섹스 피스톨스의 데뷔공연을 지켜본 이는 42명이었다.


이날 섹스피스톨스의 공연은 맨체스터의 펑크록 신의 시작을 알리는 것과 같은 공연이었다.
공연에 뻑 가서,
"섹스 피스톨즈는 팝스타라는, 숭배의 대상과도 같은 신적인 존재로서의 뮤지션의 신화를 파괴하는 것 같았다"고 말한 버나드 섬너는 역시 같은 자리에 있었던 피터 후크와 밴드를 결성했고, 역시나 공연장에 있었던 이언 커티스가 나중에 밴드에 참여하면서 조이 디비전은 시작됐다. 이언 커티스 혹은 <컨트롤>이라는 영화로도 알려진, 조이 디비전. 단 두 장의 정규앨범, 4년이라는 짧은 활동기간, 그럼에도 그 음악이 다른 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 그룹이지. 

그밖에도 이날 공연에 있었던 몇몇은,
'버즈콕스', '뉴 오더'(조이 디비전의 후신), '진저 넛' 등의 밴드를 결성했다.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밴드들이 그날 섹스 피스톨스의 공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뭐, 오해는 마시라.
내가 대단한 일을 했다는 것도 아니고, 역사적인 순간이 될 거라고 얘기하는 것, 아니다.
행여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얼토당토 않은거고.

나는 그저 커피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품은 커피세계에 작은 균열이라도 일어나,
커피를 통해 좀더 각자의 우주가 넓어지길 바랐을뿐.

뭐 혹시 또 아나. 그 중 누군가는 커피혁명가가 될지,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바리스타가 될지.

4시간 여의 내 생애 첫 번째 커피수업.
나름 나쁘지 않았다고 자평하면서,
심지어 "커피수업이 참 재미있었다"고 말해준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커피수업을 마치고,
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찾아 마포아트홀을 찾았는데.

바로 이것.
붕가붕가레코드의 도서발간기념 총력레이블전 제2탄
"우리는 나아지고 있다" 

취재가 목적이었긴 하나,
그것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면서 나는 온전히 공연을 즐겼다.
즐거워서, 그 딴따라질이 사랑스러워서, 나는 그것을 혁명이라고 생각했다.

모름지기, 지금의 혁명은 그런 거다.
즐거운 것, 재미있는 것, 놀 줄 아는 것. 꺄아아아~

10월혁명이나 트로츠키의 혁명과는 또 다른, 그러면서도 맥락이 통하는.
"뭐라도 재미있는 것을 해보자"는 모토에 맞게,
무대위의 밴드나 함께 보는 관객들이나 열심히 혁명을 즐기고 있었다. 나 역시!
어쩌면 이날 공연을 본 누군가는 밴드를 결성해서 음악을 즐길 터이다.
혹시 아나, 붕가붕가의 밴드를 능가하는 그런 음악을 하게 될줄.

내가 보기에, 좆같은 꼰대들이 만들어놓은 이 엄혹한 시대는,
그 꼰대들이 다 놀 줄 몰라서 그런 거다.

무기력한 아해들이나 청춘들도 어쩌면 마찬가지다. 놀 줄 몰라서!
아해들에게, 청춘들에게 놀이를 돌려줘야 한다. '스펙'따위 타령 그만하곳.

아무렴, 2009년 11월7일의 혁명은 그렇게 놀고 있었다.
즐거웠다. 혁명은 그렇게 놀 줄 아는 사람이 만드는 거다.
우석훈 박사의 말이 맞다. 우리는, "노는 것을 회복해야 한다."

제대로 놀 줄 아는 그들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위해,
우리도 함께 재미있고 즐겁기 위해서,
"여러분의 현금이 저희에겐 힘이 됩니다"라는,
붕가붕가레코드 곰사장의 이 말, 철썩같이 믿고 지지한다.


놀 줄 아는 연대를 위해, 꺼내야 할 것은 현금. 
김현진도 그리 말했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 보니까 연대를 잘 못한다고 괴로워하는데 시간이 없을 땐 ‘현금빵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신자유주의적 시각의 연대긴 하지만, 별달리 시간도 여유도 없을 땐 최선의 연대는 입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연대를 받은 적 있는 나로선, 깊이 공감한다.
커피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나의 모토는, '지속가능한 커피질'이었고, 여전히 그렇다.
부디, 나의 커피질도 지속가능하길, 버티고 견딜 수 있길...
이날 내게 용기와 위안을 준 커피스트들과 붕가붕가레코드의 딴따라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참,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책은 굉장히 유쾌하고 재미있으며 흥미롭다.

가능하면, 꼭 현금 내고 사보길 권한다! 

posted by 낭만_커피

오늘(11월10일).

나는 어쩔 수 없이, 랭보를 떠올렸고,

아무래도 그에 걸맞는 커피레시피는 '내 심장의 임무', 에스프레쏘 리쓰뜨레또.

그 검은 액체를 내 심장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삶이든, 커피든, 두 번이 없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베를렌이 랭보와의 사랑을 회상하며, 아마도 나지막히 읊조렸을 "나의 가장 빛나는 죄악".

검은 액체는 내 심장에 묻고 있었다.

네 생애 가장 빛나는 죄악이 있니? 너는 살아가는 동안, 그걸 만날 수 있겠니?

글쎄... 동성애까지는 내 취향이 아니니까, 그럴 것까진 없겠지만,

나는 심장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을 이야길 건넸다.

삶이야말로, 어쩌면 꾸역꾸역 삼켜야하는 비루한 생과 일상이야말로,

나의 가장 빛나는 죄악이지 않을까.


.... 물론, 내 심장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검은 액체를 꿀꺽~ 삼켰을 뿐...



젠장, 바람 참 많이도 분다. 너도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를 그리는 것이냐.

아니면, 랭보의 시마냥,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고, 퇴출시키며, 강제출국이나 시킬 줄 아는, 

이 기똥차게 엄한 시대, 찬바람을 막아주는 존재가 없음을 한탄하는 것이냐. 

<토탈 이클립스>라도 보고 싶은 날이다... 하~~~


자고로, 시인이 위대한 이유는,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는 몸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랭보가 그랬듯, 우리에게 지금 이 시대의 진짜 시인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러니까, 랭보의 이말도.

"시인은 길고, 거대한 타락에 바탕을 둔 모든 감각을 통해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1871년 5월 폴 드메니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나는 차츰 그가 세상과 절연했던 나이에 도달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시인도 아니요, 꽃미남도 아니기에,

어느 순간, 그가 살았던 시간을 훌쩍 건너뛸 것이다.

다행스런 일이지. 하~~~


에라잇, 술 모임이나 가야지~ 랭보를 위하여~

오늘 누가 랭보를 떠올리기나 하겠냐만.

뭐, 어때. 내가, 내 심장이, 바람구두를 얘기하잖냐.

당신의 랭보는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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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빛나는 죄악”, 랭보

11월에 생각하는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


침상 주위에 헝클어진 것들은 흡사 상복 같은데,

살을 에이는 듯한 겨울의 북풍은 문간에서 탄식하고,

방안에 음산한 바람을 가득히 불어넣는다.

한 차례 휘둘러보기만 하여도 무엇이 부족한가를 누구나 알 수 있다.

이곳에 있는 두 어린아이에게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사랑 가득한 미소로,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어린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 어린이들 몸 위에 모피나 이불을 자상하게 덮어주는 일도 잊었단 말인가.

“미안하다!”라고 한마디 말한 다음, 떠나기 전에,

새벽녘의 추위로 어린아이들이 감기 들지 않도록

문을 꼭꼭 닫아주어 찬바람을 막아주는 일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어머니의 꿈, 그것보다 더 따뜻한 침구도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새들,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있듯이

손발이 얼어버린 이 어린아이들은 아름다운 환영으로 가득 찬 감미로운 꿈을 장만한다.

- 아르튀르 랭보, 「고아들의 새해 선물」 중에서 -


열다섯 살, 아직은 청소년이었던 아르튀르 랭보(Jean Nicolas Arthur Rimbaud) (1854.10.20 ~ 1891.11.10)의 데뷔작은, 어쩐지 지금의 우리 시대를 연상 시킨다. 어머니가 없는 시대. 찬바람을 막아주는 일을 하는 존재의 부재에 시달리는 우리들. 열다섯의 천재시인의 눈에 비친, 어머니 없는 고아들의 시절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우리들. 찬바람이 불어줄 이즈음, 랭보를 떠올리는 이유다.


그러나 이 천재시인은, 가을도, 겨울도 아닌 어정쩡한 계절, 방랑이 질퍽댈 것 같은 11월, 세상과 절연했다. 아무 말 없이 훌쩍 떠난 연인처럼, ‘바람구두’를 신고 떠났다. 그것은 아마 외로움과 불화 때문이었으리라.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폴 베를렌과의 격정적인 연애를 끝내고 세상에 삼투압하지 못한 천재가 택할 수 있었던 마지막 카드.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았기에, 시큰둥해져버린 생. 더디 가는 법을 알았더라면, 그의 예술적 탐험은 조금이라도 더 가능했을까.


반항과 불화가 만든 시 세계


우리가 아는 랭보의 모든 것은 불과 5년, 열다섯부터 스무 살 무렵에 이뤄진 것이다. 무엇이 이토록 조숙한 천재를 만든 것일까. 그의 생을 잠깐 훑어보자. 보병 대위였던 아버지는 일찍 집을 버리고 나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 아래서 자란 그는, 뛰어난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과도한 엄격함과 아버지 없는 결핍감 사이에서 랭보는 반항을 꾀하고 자유를 갈구했다. 중학시절 은사였던 조르주 이장바르에게 문학적 영향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열여섯 살, 학업을 포기했다. 이듬해 스승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모든 감각의 타락을 통해서 절대자에게 도달”하겠다고 선언한 그는, 탕아적이고 반항적인 천재의 기질을 발산하기 시작한다. 열일곱,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 천재의 행보는 ‘견자(見者, voyant)’라는 말로 압축된다.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프랑스 철학자 엘베시우스, 루소와 보들레르 등으로부터 문학적․사상적 자양분을 흡수한 그는, 가출을 하고 방랑을 일삼았다. 시도 함께 익어갔다. ‘시인은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는 몸을 지닌 존재’임을 증명하듯, 그의 시는 세상을 꼬집고 흔들었다. 동시대 유럽문명에 대한 회의, 부르주아 도덕에 대한 혐오, 제 구실을 못하는 종교적 교리에 대한 경멸, 우월주의에 빠진 식민통치자들의 거만함과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부패와 타락을 향한 개탄 등 그는 시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은 혁명론자이기도 했다. 즉, 시인은 우주의 무한한 시공간을 꿰뚫고 개인에 대한 인습적 개념을 형성하는 제약과 통제를 무너트리는, 예언자적인 견자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시 세계를 펼쳤다.


십대의 천재시인은 그렇게 기존의 문학을 초월하려는 일대 모험에 나섰다. 그가 처음 견자라고 믿었던 시인이 바로, 폴 베를렌이었다. 대중들에게 세기의 스캔들로 더욱 많이 회자되는 랭보와 베를렌의 사랑. 대작이었던 「취한 배」를 들고, 그는 베를렌과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1871년, 랭보는 열일곱의 나이였다. 문학적으로 서로에게 매료된 두 사람에게 닥칠 운명은 바로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당시 베를렌은 결혼한 상태였지만, 끌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관계도 영원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방랑의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아내와 랭보 사이에서 베를렌은 때론 갈팡질팡했고, 랭보는 지나치게 집착했다. 1873년 브뤼셀에서 술에 취한 베를렌이 랭보와 논쟁을 벌이다, 권총을 쐈다. 랭보는 왼손에 상처를 입었고, 베를렌은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것이 두 사람의 이별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랭보는 이 2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표작인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썼다. 베를렌은 이때를 “나의 가장 빛나는 죄악”이라고 회상했다. 형용모순이 빚어내는 이 아찔한 생의 기억, 예술가들의 특권일까. 베를렌이 랭보에게 붙여준 별명이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다. 하지만 천재에게도 힘겨운 시기는 상흔을 남기는 법인가보다. 문학적 열의가 식기 시작했는지 랭보는 살 길을 모색한다. 그 시기를 관통하는 산문시집 《일루미나 시옹》(1886)은 프랑스 산문시의 최고봉으로 손꼽히기도 하지만, 랭보에게 더 이상 시는 모든 것이 아니었다.




바람구두를 신고 떠난 모험가


아, 나는 이제 인생에 아무런 미련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의 삶 자체가 매우 피곤한 것이었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었습니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피곤의 연속이며 기후 또한 참기 어렵습니다.

(…) 인생이 단 한 번으로 끝난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사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하라르에서 쓴 랭보의 편지 중에서 -


부르주아와 물질만능의 부조리를 십대에 깨닫고 이를 조롱하고 저주하며 시대를 거스르던 랭보는 그래서 모험가였다. 예술적 방랑도 너무도 많은 체험이 압축된 탓일까. 새롭고 물질적 세계를 향한 마음의 쏠림 역시 강했다.


예술적 자유의 세계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스무 살이 넘자 문학을 단념했고, 예술적 자아를 배신했다. 시를 황금과 상품으로 바꿨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무대로 상인이자 무기밀매상으로 남은 생을 보냈다. “오만이 잃어버린 자비보다 낫다”며 예술적 자유인으로서의 오만은 풀이 꺾인 것이다. 그것이 견자로서의 또 다른 방랑이었을지 모르겠으나, 그는 ‘돌아온 탕아’와 같은 레떼르를 거부했다. 시인과 무기밀매상의 간극이 메워지진 않지만, 한편으로 시 역시 세상에 저항하는 랭보만의 무기였음을 감안하면, 그것은 그만의 극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


그토록 혐오하던 물질세계에 빠져 지내다 한쪽 다리를 절단(매독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있다)하고, 홀연히 서른일곱의 나이로 쓸쓸히 맞이한 죽음. 삶을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마냥 보내다 요절한 바람구두. 그 바람구두의 생이 끝난 지점은 11월이 맞다. 인생이 단 한번으로 끝난다는 사실에 안도했던 그를 떠올리기에도 11월은 어울린다. 다만 이것은 거의 확실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격정의 시절을 관통하면서 랭보에 매혹당할 순 있겠지만, 두 번은 없다. 랭보 역시 그러했으므로.



[문화예술 크리틱 저널 - 뷰즈 2009 11·12월호 기고]
posted by 낭만_커피
함께 늙어간다는 느낌. 에단 호크가 그렇다.
<죽은 시인들의 사회>가 그랬고, (10대)
<비포 선라이즈>가 그러했으며, (20대)
<비포 선셋>이 또한 그랬다. (30대)

그리고, 얼마 전, 보았던 <뉴욕, 아이러브유>에서 그는,
제시(<비포...>의 남자 주인공)가 40대가 되면 저러할 것 같다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제시를 기억하는 이라면,
<뉴욕, 아이러브유>를 보면 참 반가울 거다.


무엇보다, 오늘(10월22일)은,
한국에서 비포 선셋이 개봉한 지 5주년 되는 날.

사랑할 때, 당신과 꼭 함께 보고 싶은 이 영화(들).
함께 보실래요? ^.^*
그리하여, 난 제시, 당신은 셀린느.

아울러,로맨스.
이 말만 들어도 나처럼 가슴 설렐 당신에게 권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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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원나잇 스탠드 그리고 하루(들)

2004년, 한 영화가 개봉했소. 그 영화의 개봉이 특별했던 건, 기다림 때문이었다오. 그것도 무려 9년이라는 시간. 한 사람을 1년도 기다릴 자신조차 없던 녀석이 9년이라니!

글쎄, 나도 웃긴다오. 고작 2시간도 되지 않을 시간인데, 그들의 특별한 하룻밤에 푹 빠져 9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렸으니. 모기가 피를 빨아먹기 위해 한 사람만을 기다린 것과 같이, 정말 이상한 노릇이 아닐 수 없소. 더구나 그 기다림은 예정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오. 후속편? 언감생심!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이었소. 혹시나 했던 것은 사실이라 해도 말이오. 그런데 나는 어떤 주술에 빠져 그저 막연하기 그지 없는 그 기다림을 하고 말았다오. 오호, 통재라. 어찌 하오리까.


“9번 트랙, 6개월 후 6시”

이 말만 없었어도 나는 그들을 궁금해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소. 미쳤지. 이 말이 뭐라고.-.-;; 그러고 보니 그들이 처음 만나 사랑을 나눴던 1995년, 나 역시 그들처럼 20대였소. 군대라는 철창에 갇혀 있던 그때. 휴가를 나와 우연히 그들의 이야길 접했고 그 대단하지도 않은 이야기에 어쩌다 마주친 ‘매혹’. 한마디로 당한거지. ‘원나잇 스탠드’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아~ 나도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 기차를 타야겠다. 한 커플이 싸우고 있는 기찻칸을 찾아 책을 읽다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누군가와, 같이 내려야겠구나!


그리곤 혼자 두둥~ 상상의 나래를 폈소. 휴지도 없이 화장실에 들어간 그들의 뒷일을 봐준 것이오. -.-;; 내 생애 가장 후일담이 궁금했던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그렇게 6개월 뒤를 기약했지만, 그 뒷일은 그 로맨스에 도취된 각자의 몫이었지요. 그러다 불쑥 9년이 지난 뒤 30대가 된 그들이 돌아오다니. 이번엔 <비포 선셋>! 해 뜰 때까지 체력을 자랑하며 빛나게 떠오르던 수다남녀는 이젠 해 질 때까지만 쌩쌩한, 지는 해가 된 거유?

그런데 나도 그들처럼 나이를 먹었더랬소. 나도 당신들처럼 30대라오. 하하하^^;; ‘6개월 후’란 약속은 증발하고 9년 만에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래 어떻소? 그런데 당신들 참 많이 늙었구료. 그동안 참 궁금했는데, 그리하여 후속편이 나온단 얘기를 듣자마자, 정식 개봉 전 선보인 그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보고 말았다오. 그렇게 해야 내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거든. 후후. 

재미있는 건 말이오. 당신들의 행적을 따라 내 마음이 그대로 움직였다는 거요. 나이를 먹고 세월을 머금었는데도 나는 당신들이 여전히 좋은가보우.

그들의 후일담, <비포 선셋>을 만나자, 나는,
비엔나가 아닌 파리를 가고 싶어졌고,
기차가 아닌 유람선을 타고 싶어졌고,
음악 청취실이 아닌 사랑하는 누군가의 집에 가기 위한 계단을 오르고 싶어졌고.
그리고 왈츠풍의 노래가 너무도 듣고 싶어졌다오.

다음엔 대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 거요? 그땐 아마 우리 모두 40대? 푸하하. 끔찍하오. 세월이. ^^;; 그런데 그것도 재미있구료. 해 뜨기 전과는 또 다르지만 부채살처럼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는 이야기의 단초를 제공한 채, 선셋의 풍경을 닫지 않았소. 다음에는 ‘애프터 선셋’? 혹은 ‘비포 문라이즈’? 대체 비포 비포만 읊어댄 당신들 다음엔 뭐 할거유? 애들은 재웠수? 이 담엔 (나도 40대가 될 땐) 40세 미만 관람불가로 어떻수, 콜?

수다남녀의 비엔나 여정에 빠진 이유

보고 또 보고 그들을 보는 재미란 쏠쏠하오. 특히나 가을이 짱이겠지만,  어느 계절이라도 상관은 없겠소. 가슴 저릿한 로맨스를 하거나 엿보는 것이 꼭 특정 계절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듯 말이오. 그들의 이야기는, 로맨스를 꿈꾸거나 로맨스를 하고 싶은 우리에게 정말 좋은 교재라오. 사랑에 목마르거나 통째로 사랑열매를 갈아 마시고픈 우리에겐, 그들은 하나의 축복이라오. 음하하. 

여기서, 그들이 처음 만난 얘기 잠깐.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채 하루도 되지 않는 시간. 그건 마법에 빠지는 순간이라오. 사랑했던, 아니 사랑에 풍덩 빠진 그때를 당신은 기억하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호감, 사랑이 전개되는 과정을. 단언하지만 그건 ‘마법’이라오. 각자 다른 세계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 마법은 ‘사랑’이란 형태로 변신하지. ‘우연’의 이름으로 기워진 ‘운명’과 ‘필연’의 사진첩 같은 거.


아 그런데,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표정이 보통이 아닌 거라. 일체의 영화적 장치나 우연의 남발 따위는 없소. 쫄깃쫄깃하게 밀착한 듯한 현실감. 더불어 여느 사랑이 그러하듯, 계획되지 않은 생의 어느 한 순간에 깜짝 다가온 사랑의 마법. 그들은 어느덧 마법이 아닌, 사랑의 포로가 돼 있더라오. 나는 그런 그들의 로맨스에 빠진 포로. ^.^

‘이 순간 (함께 내리자고) 말하지 않는다면 평생을 후회할지 몰라’라고 생각했을 제시(에단 호크)의 ‘타임머신론’이 비엔나에서의 동행을 촉발하고, ‘비엔나는 사랑을 싣고’ 익어간다오. 나는 이전엔 ‘하루’가 짧다고만 생각했지만, 아뿔싸 하루는 사실 충분한 시간이었소. 삶과 죽음, 인간, 남성과 여성, 가족, 미래, 사랑과 실연 등 그 수다는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더라오. 그것이 밍숭맹숭할 수도 있었던 수다남녀의 여정에 빠져든 이유요. 거기엔 또한 사랑이, 로맨스가 있었으니까. 사랑에 대한 방정식 풀이! 

서로를 알고 싶을 때 ‘진실게임’을 통해 솔직하게 자신의 첫 번째 성적 감정을 내뱉거나, ‘전화게임’으로 현재 자신의 심정을 전달하는 것도 괜찮다오. 무엇보다 ‘케이트 블룸’의 ‘Come here’를 들을 수 있는 음반가게 청취실의 풍경이 가장 짜릿하더이다. 몰래 상대를 훔쳐보다가 상대방 시선이 느껴지면 아닌 척 다른 곳을 쳐다보는. 서로에 대한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억지 애를 쓰는 표정과 분위기에, 내 가슴은 그저 콩닥콩닥. 무지무지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아웅~. 결국 셀린느는 나중에 “내가 다른 곳을 볼 때 날 몰래 훔쳐보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라며 고백까지 하구. (여기서 Tip. 몰래 훔쳐 볼 때는 상대방이 알게 하라! ^.^)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원나잇스탠드’

고백하자면, 뭐니뭐니해도 그들의 ‘원나잇 스탠드’가 가장 짜릿했소이다. 큭큭. 애당초 ‘내일’이 없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했던 그들은 그 ‘하룻밤’이 모든 것이었나보우. 근데 그 제약이 로맨스를 더욱 깊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소. 서로의 내면에 다가갈 시간이 없음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그들에게 미국과 프랑스라는 물리적 거리감까지. 에구구 사랑이 어쩌면 이렇게 멀고도 험하오. 하지만 그들은 지금-여기,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한다오. 역시, 그들은 사랑을 아는 사람들이오.

“내일이 지나고 나면 우린 아마 다시는 못 만나게 되겠지?”라고 묻는 셀린느의 질문부터, 그들은 ‘내일’을 생각하오. 흔들리면서도 그들은 말을 잇지. “오늘밤뿐이라고 해도 그리 나쁘진 않잖아?” “왜 사람들은 관계가 영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오늘밤뿐이라고 생각해. 망상도 추측도 없겠네” “그냥 오늘밤을 멋지게 만드는 거야”


서로 사랑에 빠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들은 서로의 처지를 아오. 그렇듯 사랑은,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사랑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은’ 시간을 함께 했는지가 더 중요한 것 아니겠소!

그래서 “키스 받고 싶어”라고 제시에게 속삭이던 셀린느의 표정! 나는 잊지 못하오. 그들이 그 순간 얼마나 서로를 원하고 사랑하는지, 그 감정이 찌리릿. 그리곤 깊은 밤을 함께 날았겠지? 직접 보여주진 않았지만, 그게 자연스럽잖소~

내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지만 <비포 선셋>은 아주 쉽게 그 날의 순간을 풀어놓더오. “그날 밤 함께 잔 기억이 없어. 난 콘돔 없이 안 하거든”이라며 딱 잡아떼던 셀린느는 제시의 추궁(?)에 “우리 그날 밤 두 번이나 했어”라고 그 날의 짜릿한 원나잇스탠드에 대해 발설하기도 한다오. 흐흐. ^______^

그들은 인간관계의 한계를 아는 것 같소. 대개의 사람들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영원히 이어가야 한다고 말하고 생각하지만, 어디 모든 경우가 그런가. 누군가를 만나고 연락처를 주고받지만 그 뒤 한두번 만나고 전화하다가 흐지부지되거나, 아예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잖오.

그렇다면 딱 그만큼의 관계이고 인연 또한 소중하지 않을까! 나는 제시와 셀린느를 보면서 깨달았고,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소. 어떤 관계든, 헤어진 연인이든, “인연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기. “딱 그만큼의 인연이고 관계”인 셈이라오. 그리하여, 그 순간에 충실하고 좀더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족해! 인연이 아니란 식으로 관계가 지속되지 못했음을 단정 짓는 건, 그저 자기 위안이 아닐까 하오. 그 인연을 맺었던 사람에겐 어쩌면, 예의가 아닌.   

단 하룻밤, ‘원나잇 스탠드’라고 규정짓더라도 그들은 그 시간, 자신들의 감정에 분명 충실했음이 분명하오. 누구에게나 휘발되고 말 ‘순간’이라도 추억과 낭만이 곁들여질 수 있겠지. 평생을 잊지 못하고 간직할 어느 감정을 품을 수도 있겠지. 그렇듯, 낭만에는 ‘순간성’이 존재하오. 낭만의 (끝나지 않은) 끝에 허무와 슬픔이 존재하더라도, 어쩌면 다시 만나 낭만을 다시 살릴지 모른다는 기대 혹은 희망이 있기에 사랑은 끝나지 않는 법. (어째, 그럴 듯한 궤변(!) 같소?ㅎ)

모든 것은 완벽하지 않은 법이오. “오늘밤뿐이라고 생각하자”던 그들이 다시 만날 약속을 힘겹게 하는 걸 보아하니. “내 맘과 다를까봐 두려웠어”라며 다시 만나잔 말을 쉽사리 꺼내지 못하던 그들은 결국 5년에서 1년, 그리고 6개월. 어젯밤부터, 즉 6월16일부터 6개월 후 저녁 6시, 12월에 다시 만나기로 한다오. 어땠소? 이게 또한 사람의 마음 아니겠소. 어젯밤과 또 다른 아침의 마음. 아침의 주림을 저녁의 다담상으로 잊는, 우리네 사람살이.


비엔나의 연인에서 파리의 연인으로

그들이 다시 만날까,하는 건 그저 관객의 마음에 맡긴 것으로 생각했다오. 그런데 감독(리처드 링클레이터)와 두 배우(에단 호크, 줄리 델피)도 궁금했나보우.

전화나 편지는 우울하다며 다른 어떤 안전장치도 하지 않은 그들은 9년 전 ‘later’이란 말로 서로를 보냈다고 하오. 사랑을 이어줄 수 있는 유일한 주문. 낭만의 끝에 약속을 담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끝이 아닌) 헤어짐. “너와 있어서 행복해. 넌 모를 거야. 왜 지금이 내 인생에서 그토록 중요한지. 멋진 아침이야. 이런 아침이 또 올까”라며 사랑에 달뜬 사람들의 후일담이 궁금하지 않으면 그게 제대로 된 인간이우. 커흑~ ‘최악의 이별은 추억할 만한 게 전혀 없다는 것’인데 그들에겐 추억이 너무너무 많지 않던가 말이오.

사실, 6개월의 약속은 어긋났다오. 낭만의 깨어짐이지. <비포 선셋>에선 그렇게 설명된다오. 9년 전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이리 기억했소. 기차역에서 헤어진 제시는 버스를 타고 피곤한 듯 머리를 뉘이고, 셀린느는 기차에서 창밖을 응시하며 미소를 짓다가 눈을 감는. 그들의 로맨스가 흩뿌려진 비엔나 곳곳의 풍경들이, 그들 없이 덩그러니 남은 풍경들이 하나둘 스쳐지나가면서 이야기는 접혔고.

근데 <비포 선셋>을 다시 만나니, “낭만은 죽지 않는다, 다만 부활할 뿐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이 났소. 다시 따따부따 수다를 풀기 시작하는 수다 로맨스의 재현이라. 근데 꽃미남에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지닌 한편으로 개구졌던 제시는 움푹 패인 얼굴에 주름이라는 훈장을 차고 훌쩍 커버린 남성의 향기를 품고 있었고, 아침햇살 같은 상큼한 매력의 셀린느도 역시나 같은 훈장에 농익을 대로 농익은 저녁노을 같은 여인이 돼 있었소. 그러나 그게 나쁜 건 아니었소. 나 역시 그들처럼 세월을 머금고 30대가 돼 있었거든. 좋잖아~ 제대로 나이를 머금는다는 것. 앞선 해와는 다른 나, 내가 겪은 세월의 흔적을 품을 수 있다는 것.

이 낭만은 항상 시간의 한계에 봉착하는 속성을 지니오. 전과 달리 해 지기 전까지의 시간. 다시 헤어짐을 전제로 옛 사랑을 확인하는 작업.

그들은 그날처럼 수다를 떨고 산책을 하더오. “나 좀 변했어?”라고 묻는 셀린느에게 제시는 “벗은 걸 봐야 알겠는데~”라고, 세월만큼 농 익은 그들의 수다를 풀어놓고. 물론 20대의 매혹적인 어록과는 다른 30대에 맞는 대화록을 재구성하오. 허투루 먹은 나이가 아닌, 현명하게 세월을 담금질한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그들의 수다에 매혹 당했다오. 같이 나이를 먹어서인지 그들의 수다가 귀에 쏙쏙 꽂히고 그 느낌과 감정을 알 것 같았소. 낯선 공간과 하룻밤이라는 제약이 준 강렬하고 절실한 감정과는 또 다른 공간과 시간에서의 흐름. 나는 무엇보다 해 뜨기 전에 나타나지 않은 그들의 힘겨움이 가슴에 박히더군.

지리멸렬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제시는 “누가 만지기만 해도 내 가슴은 무너져”라며 공허감을 토로하고 셀린느는 “그날 밤 내 모든 걸 쏟아 부어서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밤을 보냈는데, 다른 로맨스가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어?”라는 로맨스의 후유증을 내뱉지. 에휴~ 사랑아, 사랑아, 길을 묻고 싶다.


그러나! 30대라고 낭만이 없을쏘냐. 서글프고 지리멸렬한 삶에 끼어든 로맨스의 마술. 낭만은 그때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수다는 계속 돼야 하는 법이오. 우하하. 


따져보자면, 두 사람, 로맨스에 대한 생각이 서로 바뀌긴 했소. 사랑하는 사람이 머리를 어떻게 빗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말할 건지, 그렇게 서로를 아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던 셀린느는 사랑에 냉소적이고 시니컬한 현실적인 여인이 됐다오.

반면 같이 오래 산 부부들의 권태감을 얘기하던 20대의 제시는 그래도 사랑이 있어야 한다며 로맨스를 옹호하는 30대가 됐다오. 허허. 재미있더군. 그들은 한결같은 순수와 로맨스로 살아가는 20대가 더 이상 아닌 로맨스에 대한 환상과 허상의 교차로에서 자신들의 현실과 위치를 인식하고 있는. 세상을 근거 없는 낙관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택하는 냉소까지.

로맨스, 당신 생의 로맨스에 축복을..

중요한 건, 로맨스가 다시 부활한다는 것이었소. 해 뜨기 전의 그 잊지 못할 낭만은, 해 지기 전이라고 변하지 않았고 다른 모습과 형태의 낭만으로 나타나는 마술. 나는 그 수다를 다시 만나면서 행복했다오. 당신들도 알잖소. 9년 전 그들이 나누었던 그 하룻밤 로맨스가 얼마나 짜릿했는지. 사랑했던 기억은 세월이 흐르고, 주름이 자글자글 생기고, 옛 모습과 달라지더라도 잊혀 지지 않는 법인가보오. 그리고 다시 열린 결말을 던지는 그들의 잔인함(?).



로맨스. 이 말만 들어도 나처럼 가슴 설렐 당신에게 권하오. 내게 이 영화(들)은 사랑 혹은 로맨스, 관계와 인연, 감정의 교류, 사람살이를 알려준 영화였다오. 내 가슴에, 심장에 박힌 이야기이기도 하고. 당신도 이들을 만나보시오. 다시 이들을 만나도 좋고, 이들과 비슷한 세월을 머금지 않아도 좋소. 혹시나 제시와 셀린느를 보면서 유럽 배낭여행의 낭만을 꿈꾸었거나 하다못해 기차나 고속버스를 탈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기라도 했다면. 낯선 곳에서의 낯선 사람과 하룻밤을 보내면서 새로운 관계를 같은 비일상의 판타지도 빙고~


뭐 꼭 그런 게 아니라, 잊지 못할 옛사랑의 추억이 있어도 좋겠소. 당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누군가가 있소? 아님 지금과는 다른 삶을 생각해 본 적 없소? 과거의 어느 한 순간에 선택을 달리했다면 달라졌을 법한 잃어버린 기회. 물론 그런 가정은 무쓸모이지만, 현재 다시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로맨스를 나눴던 사랑을 우연히 만난다면, 추억과 그리움으로 쌓였던 그 날을 다시 복구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온다면,

당신은 어떡하겠소? (질문이 좀 가혹하더라도 용서하시오! ㅎㅎ) 


아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건네고,
다소 길었던 내 인생의 어떤 영화(들)에 대한 허접한 감상을 접겠소.

<비포 선라이즈>를 꼭 봐야할 열사람!! (오래 전, PC통신 천리안에 나온 글)  
1. 유럽여행의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고 싶은 사람.

2. 헌팅 또는 헌팅 당하려고 하는 족족 실패하는 사람.
3. 유럽여행 계획을 짜면서 비엔나의 갈만한 곳을 아직 정하지 못한 사람.
4.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과의 가슴 찡한 데이트코스 일정을 고민하는 사람.
5. 친구인지 애인인지 헷갈리는 상대방에게 유치하지 않게 속마음을 터놓고자 하는 사람.
6. 오래된 연인과의 지루한 만남에 지겨움을 느끼며 화이트의 ‘7년간의 사랑’에 오직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
7. 정확한 표준영어회화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8. 인터넷이나 영어 채팅방에 들어가서 감히 영어로 이성친구를 꼬시려고 하는 사람.
9. 이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경우를 당한 사람을 위해 미리 인터넷 사용법을 차분하고 친절하게 가르쳐 줄 사람.
10. 비포 선라이즈를 아직 보지 않은 모든 사람.


이건 내 마음대로 정한, <비포 선셋>을 꼬옥 봐야 할 열 사람! 

1. 사랑했던 사람과의 지키지 못한 약속이나 바람 맞은 기억을 지니고 있는 사람.
2. 파리의 골목골목과 구석을 돌아다니며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 픈 사람.
3. 유람선을 타고 지나간 사랑의 기억을 되새김질 하고픈 사람.
4. 잊지 못할 옛 사랑을 우연이라도 다시 만나고픈 사람.
5. '이젠 더 이상 내게 사랑을 없어'라며 사랑에 회의적인 사람.
6. 사랑에 거듭 실패하면서도 '그래도 사랑은 있어'라며 언젠가 다가올 새로운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
7. 하룻밤이라도 평생을 잊지 못할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
8. 언젠가 그 사랑을 책으로 엮어내고 싶은 사람.
9.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직접 노래를 부르고 싶은 사람.
10.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그 영화를 잊지 못하는 모든 사람.

posted by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