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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4. 13:57 문래동 아티스트


창문 밖으로 차 소리가 들린다. 내게 익숙하던 개구리 우는 소리는 없다. 하늘에는 달과 별이 없다. 대신해서 가로등이 여기저기 밝다. 내가 열흘 동안 묵게 된 숙소의 문 앞에는 ‘예술과 도시 사회 연구소’라는 팻말이 붙어 있으니까.

지난 달 읽게 된 김 강 씨의 책 ‘삶과 예술의 실험실 Squat’ 앞장에 ‘또 다시 나를 설레게 하는 무언가와 맞닥뜨리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오늘, 문래 예술 공단 LAB39 건물의 옥상에 서서 나는 또 다시 설렜다. 만국기가 하나의 국기로 어우러진 깃발을 보면서, 빛바랜 옥상들이 색을 뿜어대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제대로 찾아왔구나 싶었다.

그런데 난 인턴쉽 기간에 왜 이곳, 문래 예술 공단이라는 곳에 찾아왔을까?

오늘 전공이라든지 진로에 대한 질문을 받았지만 사람들이 나에게 진로에 대해서 물어보면 적당히 해 줄 말이 없다. 어떻게 보면 한량인 듯 들리는 이 대답은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확실히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렇지만 내 앞길에 대해서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어차피 사람이 아무리 주도면밀하게 앞일을 계산해보았자 미래라는 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당신이 그것의 발목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엿을 먹이고 달아나기 일쑤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놀이다. 잡기놀이. 나 잡아 봐라. 당신이 쫓아간다. 하지만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전적으로 당신이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달려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계획하는 삶보다는 눈치껏 흘러가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삶에 대해서 조금 더 유연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과거에 살아왔던 습관대로 뻣뻣하게 굴려고 하는 관성이 작용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리고 다시 느슨해져야지. 그리고 빡빡해져봤자 남는 것도 없고 재미도 없어 보인다. 기껏해야 좀 더 나은 줄서기를 하려고 서로 아등바등 대는 꼴이다. 그냥 뛰쳐나와서 놀자. 그런데 어떻게? 그런 곳을 찾아 나서야지. 그래서 이곳에 왔다.

사실 나는 중학생 때까지 학교에서 전교 일등을 하던 멍청이였다. 너무나도 쉽게 길들여진 멍청이 말이다. 또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어김없이 그러한 멍청이로 살 뻔했는데 여차저차 이러쿵저러쿵 하는 과정을 겪으며 집을 나와 대안학교인 산청 간디학교에 굴러들어가게 되었다. 간디학교에서 모든 것을 충족시켜 준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가던 노선을 가는 것보다 삐걱거리는 일이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 세상을 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좁았던 삶의 테두리를 조금 더 확장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또 이렇게 저렇게 학교를 다니던 차에 스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스쾃에 대해서 알게 된 컬쳐 뉴스의 기사를 쓰신 분들을 만나고 내가 읽었던 스쾃에 관한 책의 저자를 만나고 사진으로 보았던 벽화 앞 노천 테이블에 앉아서 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로운 형태의 예술과 그 방법론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무언가 재밌는 일을 벌어지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곳에 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사실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굉장히 사소한 일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무언가 재밌는 냄새를 맡았고 그 냄새를 맡아서 이곳에 찾아왔다. 그래서 재밌다. 앞으로 열흘 동안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이끌림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또 다른 어디론가.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